그랬군요...그 날이었군요...

▒ 내일이 대구 지하철 참사 3주기 군요...그랬군요...
대구 지하철 참사 1주기 中
■ 꺼져버린 핸드폰
오늘은 한달 중 제일 기다려지는 용돈 받는 날. 오늘이 더욱더 기다려진 까닭은 수학여행 준비로 용돈을 좀더 넉넉히 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손에 쥐어진 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3만원. 참고서 사랴, 학용품 사랴. 정말 3만원 가지고 무얼 하라는 건지. 그리고 또 모레가 수학여행인데.
나는 용돈을 적게 주는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집을 나섰다.

수학여행인데... 평소에 쓰던 가방 가져가기도 민망하고... 신발도 새로 사고 싶었는데...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교실에 도착했다. 내 속을 긁기라도 하듯 내 짝꿍이 용돈 넉넉히 받았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나 오늘 수학여행때 가져갈거 사러 가는데 같이 안갈래?"

한창 신나게 아이쇼핑을 즐기고 있을 때 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괜히 화가 나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30분 후 다시 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나는 핸드폰을 꺼버리고 밧데리까지 빼버렸다. 그리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괜히 화를 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신발도 그렇게 낡은 것은 아니었고 가방은 옆집 언니에게서 빌릴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지…’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참! 엄마가 오늘 일나가는 날이었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습관대로 텔레비전을 켰다. 드라마가 나와야 할 시간에 뉴스가 나왔다. 뉴스 속보였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자주 타는 대구 지하철에 불이 난 것이다.

어떤 남자가 지하철에 불을 냈다. 순식간에 불이 붙어 많은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고 텔레비전에서는 지하철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만 이어지고 있었다. 몇 번을 다시 걸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리고, 꺼버렸던 핸드폰을 다시 켰다.

문자 다섯 통이 와있었다. 엄마가 보낸 문자도 두통이나 있었다. 엄마가 보낸 첫 번째 문자를 열었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쇼핑센터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나는 첫 번째 문자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두 번째 문자를 열었다.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까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 2주기 中
■ 고운 천사가 된 엄마 딸 정경에게…
너무나 여리고 고와서 어떻게 엄마 품에서 떼어 놓을까?
너무나 깨끗하고 예뻐서 어떻게 세상 밖으로 첫 발을 내딛게 할까….
스무 살이 막 지나면서 사랑스런 눈빛, 표정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까워서 어떻게 시집을 보내지.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사랑스런 정경아. 엄마는 매일 이러고 살았었지. 넌 언제까지나 엄마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부질없고 너무나 원통한 이제는 엄마만의 독백이 되어버렸구나. 모든 세상이 필름이 끊긴 채로 시간이 멈출 것 같았는데 무심한 또 한 편의 시간은 많이도 흘렀고 또 그렇게 흘러가겠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무런 기약도 없이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만 남기고 너무나 억울하게 아빠 엄마 곁을 떠난지 벌써 두해가 되었구나!

정경아 잘 지내고 있니?...(중략)...그토록 정경이가 아끼던 동생 OO이도 오늘 이 자리에 와 있단다. 2월 19일 내일이면 군입대 한지 꼭 1년이 된단다. 오늘은 OO이도 포상휴가를 받아서 누나를 만나러 온거야. 2003년 2월 18일. 사고 당일에 누나를 찾겠다고 중앙로 역으로 들어가기를 몇 번...

하지만 그 지옥속엔 어둠만이 깔려 있었단다. 온 얼굴이 잿더미처럼 까만 검정으로만 묻어 있었고,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괴성으로 누나만을 목이 터져라 불러 되었단다. 그런 네 동생이 오늘은 군인이 되어 누나를 만나러 왔구나...(중략)...

대학 졸업반이 되었을 정경아. 그래도 이렇게 숨을 쉬며 살아있는 엄마를 용서 하렴. 사랑한다면서도 보고싶다면서도 너랑 함께 하지 못한 이 엄마를 용서하렴.

보고픈 정경아 아빠도 우리 딸의 억울한 죽음. 안타까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기위해 밤낮으로 투쟁 아닌 투쟁을 하고 계시단다. 너를 죽게한 것이 이웃들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 때문은 아닌지 하는 죄책감에 한시도 맘편할 날이 없어 희생자 대책위원회와 유족들은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추모사업을 추진하고 계신단다.

아무리 귀가 없고 눈이 없는 험악한 세상이라도 진실은 통한다고 생각해. 꼭 우리의 뜻을 이룰거야. 또 그래야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신 희생자 분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 드릴 수 있을거야...(중략)...

사랑하는 엄마 딸 정경아. 넌 언제난 어여쁜 21살의 나이로 엄마 마음속에 따뜻하게 살아 숨쉬고 있단다. 이른 봄추위 속에서 땅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여린 새싹처럼 언제나 푸르게 싱그럽게 곱게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엄마 가슴속에 살아있다. 오늘도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엄마랑 얘기를 한단다.

정경아 사랑해. 그리고 정말 보고 싶단다. 보고 싶어.
2005년 2월 18일 -사랑하는 딸을 그리며 엄마가

[ 2006.02.18 다시 한번 고인들의 영혼에 아름다운 빛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

덧. 이 사고의 장본인인 김대한씨는 "살기싫다. 자살을 하고 싶다. 카드 빚에 가족이 병에 걸려 괴로워서 그랬다"라고 말했다...무기징역을 받은 김씨는 2004년 8월 30일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덧글

  • B-HUMAN 2006/02/17 18:21 # 답글

    대구사람입니다..3년이 지나도 여전히 너무 슬프네요....
  • 이름쟁이™ 2006/02/20 09:32 # 답글

    + [ B-HUMAN ]
    그 분들의 평온한 영면을 바랍니다...
  • 바람 2006/02/20 19:00 # 답글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지 이 사건을 돌이키며 울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런 사고가 나지 않게 모두가 안전해져서 불안함이 다 사라지고나면 아,,, 예전에는 그렇게 위험에 무방비 였던 때도 있었어,,,하고 말하면서 웃을 수 있을까요?
    못다한 얘기들, 못 다 피운 꿈들, 못 다 나눈 사랑들이 너무 마음 아파요.
  • 이름쟁이™ 2006/02/21 08:38 # 답글

    + [ 바람 ]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했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표현을 들을 때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에 글귀에 배어나와 항상 가슴이 아립니다...
    팔자라는 말로 매도되어서는 안되는 안타까운 그들의 남겨진 삶까지 대신 어깨에 지고 살아가야 하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감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런 마음에 공감의 표현이라도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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